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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들’-5
2025. 7. 5.
박수가 음악이 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클래식 연주 영상을 틀어두고 책을 읽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창 밖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밖은 환하고 먹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이내 빗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를 찬사하는 청중의 박수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무대 위의 두 남자가 인사를 하고 악보를 봅니다. 두 손을 모았다가 이내 박수를 치기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리듬으로 박수를 칩니다.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는 1972년에 〈클래핑 뮤직(Clapping Music)〉을 작곡합니다. 이 음악은 두 명의 연주자, 악보, 박수 세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악보를 보면, 연주자 1은 같은 박자로 박수를 칩니다. 연주자 2는 연주자 1과 같은 박수를 8번 반복합니다. 13번째 음표에서부터 연주자 2는 음표 하나를 없애고 박수를 칩니다. 다음은 두 개, 세 개, 네 개의 음표를 삭제시키며 다음 음표가 앞으로 넘어옵니다. 두 사람의 리듬은 시작할 때는 같다가 악보를 연주할 수록 점점 멀어집니다.
〈클래핑 뮤직〉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손과 발은 처음에는 박수처럼 같은 박자와 높이로 움직입니다. 연주자 1과 연주자 2의 리듬이 점점 멀어진 것처럼, 삭제되고 밀리는 음표를 따라 두 사람의 동작은 멀어집니다. 한 사람은 팔을 올릴 때 다른 한 사람은 한 다리를 앞으로 찹니다. 두 사람의 발동작 역시 다른 리듬을 밟습니다.

맨발의 여자가 무대 위에서 〈클래핑 뮤직〉을 연주합니다. 맨발의 여자가 두드리는 악기를 따라 진동이 울리고 진폭을 따라 소리가 울립니다. 맨발의 여자는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맨발과 몸으로 진동을 느끼고 발의 감각과 몸으로 연주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입니다. 이블린 글레니는 8세에 점점 귀가 들리지 않았고, 12세 때에는 청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바깥에 나가면 바람이 귀를 아프게 했고, 대화는 점점 어렵게 되었습니다. 15세에 왕립음악학교(The Royal Academy of Music)에 지원하지만 학교는 청각장애가 있는 이블린 글레니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차별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학교는 이블린 글레니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블린 글레니가 왕립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영국의 음악학교 입학 규정 역시 바뀝니다. 어떤 신체적인 이유로도 입학지원을 거절할 수 없도록이요. 이블린 글레니는 말합니다. 음악가라면 악보에 없는 것도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악기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악보를 이해하면서 온 몸으로, 세포 하나 하나로 진동을 받아들이며 악기를 연주합니다.
음악은 귀로만 듣는 걸까요? 이블린 글레니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공연장에 가서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음악은 귀뿐만 아니라 온 몸을 스쳐 지나갑니다. 음악은 온 몸의 감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만드는 사람, 소리를 감각하는 사람 양쪽 모두 그렇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손 끝으로 악보를 봅니다. 점자 악보는 음악과 점자, 영어점역을 모두 아는 음악 점역사가 제작합니다. 한글 같은 텍스트는 점자로 즉각 번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지만 악보는 아직 그런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한 음표를 잘못 점역한다면 그 음표를 읽은 사람은 본래 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연주하게 됩니다. 한 음표 음표를 꼼꼼히, 음악에 적혀 있는 지시 사항을 꼼꼼히 옮기며 악보를 그려냅니다. 한국에서는 실로암복지센터가 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를 운영하며 점자악보를 제작·보급하고, 점자악보 홈페이지(musicbraille.org)에서 다양한 악보를 내려받아 연주할 수 있도록 합니다. 최근에는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동과 촉각 등을 통해 모든 사람이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노들노래공장(nonogong.kr)에서는 노들 야학의 권리중심중증 장애인공공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노래 우리가 만든다”는 것을 목표로 매주 한 번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르골(Music box)이 가득한 집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작은 오르골부터 큰 오르골까지, 수동 오그골부터 자동 오르골까지, 오래된 오르골부터 캐릭터를 덧입힌 오르골까지 다양한 오르골이 가득했습니다. 그 중 제 눈에 띈 오르골은 종이에 구멍을 뚫어(천공 카드) 쇠막대가 그 구멍과 닿으며 소리를 내는 오르골과, 둥근 철제 원판에 구멍을 뚫은, 별자리 지도를 닮은 커다란 오르골인 폴리폰(Polyphon)입니다. 평평한 판에 박힌 구멍과 쇠막대가 부딪치며, 이미 기록된 소리를 다시 재생시키는 것, 그리고 올록볼록 올라온 글자와 손가락이 부딪치며 악보를 읽어가는 것, 그 사이에는 아주 먼 거리와 아주 가까운 거리가 함께인 듯합니다.
또한 손가락과 쇠막대 사이에, 새의 움직임을 함께 집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캐시 힌데(Kathy Hinde)는 온갖 새 떼의 사진 위에, 각각의 새의 날갯짓 위에 구멍을 뚫어 오르골 악보를 만듭니다. 새의 간격이 음을 갖고 소리가 되어 흘러 나옵니다. 캐시 힌데는 전깃줄에 앉은 새를 보고 오선지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새의 몸은 악보로 읽히며 계속 다시 재생할 수 있게 됩니다.
프랑크 ‘비포’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는 ‘떼(swarm)’에서 정치적 가능성을 찾습니다. 떼는 “벌집을 짓거나 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는 식물을 향해 움직이는 벌들처럼 유사한 크기와 신체 방향을 가지고 있고, 동일한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며, 서로 협조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동물의 무리”(프랑크 베라르디 비포,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랩소디』,정유리 옮김, 난장, 2013, 212쪽)를 말합니다. 인류는 사회가 복잡할 때 떼처럼 행동합니다. 떼를 이뤄 행동할 때 “공통의 의미가 생산되고 서로 일치하는 행동이 형성되는 장소”, “권력[의 장소]”이 형성됩니다. 새 떼를 보면 알 수 있듯, 떼에는 중앙의 명령도 없고, 떼를 전체적으로 조사·감시·통제하는 단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떼는 일정한 방향으로 행동하고, 목적이 있이 행동합니다. 서로 다른 타자들(의 신체)이 상호작용하며 떼를 만들어 이동합니다.

해롤드 페인스타인(Harold Feinstein)의 〈도보 악보 음악 몽타주(Boardwalk Sheet Music Montage)〉에서도 악보가 된 사람들의 떼-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의 모자에서는 어떤 음이 나올까요? 나란히 앉은 세 명에게서는 어떤 리듬이 나올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 공간에서는 어떤 음이 잔존해 있을까요? 한 무리의 떼가 되어,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다른 음을 내지만 조화로운 소리를 연주해내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정치적 활동은 어떤 신체를 그것에 배정된 장소로부터 이동시키거나 그 장소의 용도를 변경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보일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 『불화』, 진태원 옮김, 길, 2015)
이미지 출처
(1) 〈클래핑 뮤직(Clapping Music)〉 악보 https://blogthehum.com/2017/02/02/a-rare-alternate-edition-of-steve-reichs-clapping-music-with-an-early-filmed-realization-featuring-the-composer/
(2) 점자 악보의 예시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jemplo_de_partitura_en_el_sistema_braille.jpeg
(3) 이블린 글레니 https://www.youtube.com/watch?v=7BOMA7f5GrE&list=RD7BOMA7f5GrE&start_radio=1
(4) 폴리폰 https://en.wikipedia.org/wiki/Polyphon
(5) Boardwalk Sheet Music Montage https://haroldfeinstein.com/evolution-of-an-iconic-image-boardwalk-sheet-music-montage-1952-to-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