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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는 사람들: 『외면일기(Journal Extime)』

2025. 6. 28.

미셸 투르니에는 1924년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문학가로,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독일어를 배워 소르본 대학과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철학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실패하고 라디오 프랑스에 저널리스트로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문학으로 시선을 틀었습니다. 1967년, 그의 나이 43세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Vendredi ou la vie sauvage)』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하는 동시에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대상을 받았습니다. 뒤이어 1970년, 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의 폭력성을 암시하며 게르만 신화와 식인귀 신화를 다룬 소설 『마왕(Le Roi des aulnes)』으로 공쿠르 상(Prix Goncourt)을 받았고, 1972년부터 2011년까지 아카데미 공쿠르(Académie Goncourt)의 7번째 좌석에 임명되어 정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아카데미 공쿠르는 ‘매해 최고의,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산문 작품’이 될 현대 프랑스 문학에 상을 수여하는 단체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섯 개의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 상은 10유로라는 상징적인 상금에도 불구하고 수상자와 작품에 주어지는 상당한 관심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년 12월, 10명의 심사위원회의 회원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모여 어떤 소설 작품에 상을 수여할 것인지 즐거운 고민을 하며 꼭 같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파리 심장부의 갈리옹 광장에 있는 드루앙 레스토랑은 카미유 피사로, 로댕, 르누아르와 같은 예술가도 즐겨 방문하였던 유서 깊은 식당으로, 회원들은 이곳의 신선한 굴 요리를 즐겨 먹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종신회원이었던 미셸 투르니에는 이 식당에 관해 본문에서도 자연스럽게 언급할 정도로 위치며 특징을 자연히 익히고 있었습니다.

『외면일기(Journal extime)』는 미셸 투르니에가 내면일기(Journal intime)와는 대조적인 의미를 부여한 제목의 책으로, 외적인 사건과 풍경의 수집이 그 내용입니다. 이 일기는 보통의 일기가 그러하듯 매일의 달과 날짜에 맞춰 작성된 것이 아닌, 반세기라는 시간 동안 상대적으로 외딴 시골에서 거주하며 거두어 온 메모와 주석 등을 월별로, 사후적으로 재구성하여 쓰였습니다. 미셸 투르니에는 보편적인 일기 장르에서 관찰되는 고해성사식 친밀함에는 한발 물러 서서, 자신이 놓인 주변 세계에 대부분의 시선을 두는 것으로 바라봄과 필사를 반복했습니다. 그는 머리말에서 발견, 고안, 창조라는 세 과정의 긴밀한 연결성을 언급하며 특히 ‘발견자의 정신’에 주목했다고 말합니다. 중세 시대의 미술 작품들이 주로 일상생활을 묘사했던 것처럼, 주변부의 사소한 장면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인식에 발을 디디고 이로부터 고안과 창조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필사된 짤막한 단락들은 1월부터 12월까지의 사계(四季)를 횡단하는 일기로 묶였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 갈리마르(Gallimard)에서 2002년 첫 출간된 이 책은 출판사 현대문학을 통해 김화영의 번역으로 2004년 한국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때때로 문학보다는 사회학의 장르로 분류해야 할 것 같은 흥미로운 정보들로 인해, 사적인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인상보다도 실감 나는 구체적인 단상이 두드러집니다. 매년 1월 초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근교 중학교 체육관에서 항공사가 주최하는 분실 여행 가방 축제에 관한 일화는 과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 자못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광풍으로 인해 바닥으로 누운 나무들과 뽑혀 나간 장미 넝쿨에 안타까워하며 들장미가 피우는 열매(개장미)의 독일어 명칭인 하게부테(Hagebutte)를 짤막이 소개하기도 합니다. 야생 장미가 단순히 소관목으로서 황홀한 꽃을 피우는 식물일 뿐만 아니라 그 열매로 잼과 수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잠시 상상해 보는 것은 신선한 일이 아닌가요. 무엇보다 탁월하다고 느껴지는 특유의 감각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절에 관한 인식입니다. 파리 외곽 이블린의 슈와젤(Choisel) 자택에서 1957년부터 약 45년 이상을 거주한 미셸 투르니에는 이 고장에 어떠한 종류의 바람이 부는지, 그것이 풍경에 어떤 영향을 주고 관계를 이루는지 분명히 인지했습니다. 그는 7월에는 무르익어가는 삼복더위의 낮을 지나면 9시 30분에 맞추어 해가 지고, 8월은 ‘수동적인 여름’을 맞아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로 바캉스를 떠난다고 썼습니다. 뽑힌 나무와 새로 심어질 나무의 수종은 무엇이며, 습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계속되면 2월의 나무에 새싹이 돋다가도 얼어 죽을 것이라는 경험된 예감으로부터 그의 착실한 관찰력이 느껴집니다. 마당에 해마다 찾아오는 산비둘기 두 마리에 관한 사소한 지각은 개인의 풍경을 더욱 구체화합니다. 여행할 때면 꼭 쌍안경을 들고 다닌다는 취미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먼 곳과 가까운 곳, 익숙한 풍경과 낯선 풍경을 오가며 부지런히 장면을 인식했다는 사실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즐겁게 드러납니다.

미셸 투르니에의 짤막한 메모들을 넘기다 보면 그가 주목했던 인물이며 메모해 둔 인용문을 살펴보는 순간도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몬 베유, 로맹 가리, 앙드레 지드, 아나톨 프랑스, 프랑수아즈 사강, 스탕달,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렝 푸르니에, 안카 뮐슈타인, 샤토브리앙… 미셸 투르니에는 특유의 재치를 활용한 우스갯소리를 일기의 사이사이에 집어넣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는 한때 레비스트로스의 문하생으로 인간박물관의 인류학 실험실에서 몇 년간 일했습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두개골을 감식해 연대별로 분류하기 위해, 측경기를 들고 두개골의 크기를 재는 방식을 익혔고, 나아가 그로부터 머리 크기에 따라 헤어스타일에도 미학적 차이가 생겨난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착안해, 두개골의 크기와 모양새를 구별하는 방식이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 집단적 성격을 구별하는 대안적 방법을 제공해 줄 것이라며 나름의 유머를 다듬어 일기의 한 장에 싣기도 했습니다. 한편, 같은 동네에 살았던 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집을 방문하려다 길을 잃고 실수로 미셸 투르니에의 현관문을 두드린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를 만났다는 영화사적 일화도 짧은 단상을 통해 전해집니다.

이 책에서 그가 언급하는 모든 인물과 작품을 즉각적으로 이해하며 읽는 것은 한국어 문화권의 독자로서 아주 평탄하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일기를 감상하는 깊이와 재미 또한 그에 따라 증감할 수 있지만, 그가 포착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인식하고자 했던 주변에 관한 시선과 태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완전히 펼쳐지는 감각으로 이해되는 것과, 반쯤은 뒤덮인 채로 읽히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경험입니다만, 마지막으로 인용하며 끝맺을 미셸 투르니에식 일기 쓰기에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뒤죽박죽으로 지각된 것들 사이에서도 어떤 것이 내 손에 들어오는지를 느껴 보는 시도를 통해, 자신만이 사용하는 인식의 틀을 감각하게 되는 경험을 제안합니다.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속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4년, 125쪽)



이 글에 나온 책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4

이미지 출처

(1) 미셸 투르니에의 초상 https://www.nouvelle-fribourg.com/archives/le-vent-paraclet-de-michel-tournier-une-ego-histoire/

(2) 책 사진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3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