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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접촉면: 보부아르, 머독, 베유
2025. 9. 7.
철학 연구자인 이하영 선생님의 『선의 캐리커처: 선택과 시선의 사이에서(A Caricature of the Good: (n)either Choice (n)or Vision)』(가제)가 곧 발간됩니다. 이 책은 ‘선(Good, 善)을 향한 기대들의 완벽한 충족의 불가능성’을 그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 시몬 베유(Simone Adolphine Weil, 1909~1943), 아이리스 머독(Dame Iris Murdoch, 1919~1999) 세 사람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입니다. 세상에는 무수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저는 세상의 그 일들에 부딪칠 때마다 매번 저의 무기력과 무능을 탓합니다. 이 책을 먼저 읽으면서 그럼에도 저를 둘러싼 세계를 향한, 혹은 세계가 향한 선택/시선을 끊김없이 묻고 되물어야 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읽은 ‘모순을 두 다리를 가진 도구처럼, 핀셋처럼 사용해서, 인간의 능력으론 가닿을 수 없는 진실의 초월적 영역과 직접적으로 접촉’(시몬 베유,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 『일리아스 또는 힘과 시』, 이종영 옮김, 리시올, 2021, 74쪽)해야 한다는 말처럼 주머니 안에 핀셋을 넣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제 핀셋의 일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시지요? 곧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이 글에서는 『선의 캐리커처』와,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철학적 사유를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보부아르, 베유, 머독 세 사람의 인생과 그들이 접촉했던 삶의 일부분을 정리해 소개합니다. 책을 읽으실 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먼저 세 사람의 삶과 접촉면을 간략히 소개해 드립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0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변호사인 아버지, 은행가의 딸인 어머니 사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0살에 외할아버지가 파산하며 경제 사정이 어려워 집니다. 1925년 파리 고등사범학교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습니다. 보부아르는 소르본 대학을 다니고, 교수자격시험을 치러 최연소 합격자로 2등을 했습니다. 1등은 장 폴 사르트르였습니다. (1등은 사르트르였지만, 실제로는 심사위원들이 보부아르가 더 뛰어나다고 인정했다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그 해 처음 만났고, 잘 알려진 ‘계약’을 2년간 맺기로 했습니다. 이 계약은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는 1980년까지 이어집니다.) 1929년 보부아르는 프랑스에서 최초로 남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여성이 되었습니다. 이후 마르세유, 루앙, 파리 등 여러 학교에서 일했습니다. 1943년에는 해고를 당하는데, 한 학생의 부모가 보부아르가 문란한 생활을 해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진정서를 냈기 때문입니다. 이후 첫 소설인 『초대받은 여자』를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합니다. 소설 외에도 여러 희곡과 철학 에세이를 썼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사르트르와 함께 잡지 《레 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을 출간합니다. 1949년에는 『제2의 성』을 출간합니다(여기에 유명한 말,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가 쓰여 있습니다). 『제2의 성』은 출간 직후 프랑스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출간 4년 전인 1945년, 프랑스 여성은 투표권을 얻게 됩니다. 보부아르의 책은 참정권을 얻고 난 후의 여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언론에서는 포르노그래피라는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1954년에는 『레 망다랭Les Mandarins』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합니다. 1944년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윤리학을 다루는 『피루스와 키네아스(Pyrrhus et Cinéas)』를 씁니다.
보부아르는 프랑스 공산당과 함께 활동할 때도 있었지만, 현실 공산주의에는 반대합니다. 알제리 독립전쟁 때에는 드골에게 저항하며 알제리 독립을 지지합니다. 이 일로 극우파의 테러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1968년 보부아르는 프랑스 페미니즘(FR)의 구성원이 됩니다. 1970년대에는 프랑스 여성 해방 운동에 활발히 참여합니다. 1971년에는 343선언에 서명합니다(프랑스 여성 지식인 343명이 참여, 낙태를 허용할 것을 주장합니다). 1972년, 파리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규탄하기 위한 시위가 열립니다. 보부아르도 이 시위에 참석했고, 이후에도 계속 여성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보부아르는 1986년 폐렴으로 사망합니다. 파리 몽파르나스에 있는 사르트르의 무덤 옆에 보부아르는 안장됩니다. 『선의 캐리커처』를 읽고 보부아르의 사유가 궁금한 독자는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를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시몬 베유

시몬 베유는 1909년 2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 모두 유대인이었지만, 그들은 유대인의 전통과 종교에 벗어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베유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늘 머리가 아팠고, 크고 작은 병을 앓으며 평생을 지냈습니다. 베유는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등 언어에 능통했고, 물리학과 수학에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오빠인 앙드레 베유(André Abraham Weil)는 뛰어난 수학자로, 시몬 베유는 어렸을 적 앙드레의 천재적 그늘 아래서 변덕스럽고 불안한 십대 시절을 보냈다고도 합니다. 앙리 4세 고등중학교에서 베유는 에밀 샤르티에의 수업을 듣습니다. 에밀 샤르티에는 ‘알랭’으로 알려진 철학자로, 알랭은 부르주아를 환상 속에 사는 자로, 프롤레타리아를 노동을 감당하면서도 부르주아에게 기만당하는 자로 보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알랭은 베유에게 집단의 우상적인 성격을 일깨워 주었고, 그리스도교 정신은 권력을 거부하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교장이던 셀레스탱 부글레는 베유를 “아나키스트와 수도승의 혼합”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1931년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베유는 르퓌 국립여자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습니다. 1936년까지 이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노동자 잡지에 글을 쓰고 시위를 이끌었습니다. 1934년에는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로 일하기도 합니다. 이 때의 경험을 『공장 일기(Journal d'usine)』에 담았습니다(한국에서는 『시몬 베유 노동 일지』라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져 노동조합 연합회의에 참석하고, 계급투쟁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합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고, 베유는 인민전선 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전합니다. 뜨거운 기름에 발을 다치고 베유는 1937년 포르투갈로 향합니다. 이 곳에서 첫 번째 종교적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베유와 그의 가족은 마르세이유로 피신합니다.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에세이를 출판합니다. 1942년에는 모로코로, 뉴욕으로 갔다가 다시 영국으로 향합니다. 간호대원이 되어 프랑스 땅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고 일하고 싶었지만, 상부에서 허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1943년 폐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몸이 아팠지만 특별 취급을 거부하고, 프랑스 난민이 받던 음식을 먹으며 지냈다고 합니다. 베유는 결핵과 영양실조로 1943년 8월 24일, 34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사망 3일 뒤 검사관은 베유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애쉬포트에 있는 가톨릭 구역 묘지에 묻혔습니다. 평생 그의 관심은 가난한 이, 노동자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안쓰러워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굶는 이를 생각하며 아주 조금만 먹었습니다. 베유는 죽을 때까지 50편의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의 저서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16권의 전집으로 사후에 출판되었습니다. 『선의 캐리커처』를 읽고 베유의 사유가 궁금한 독자는 『중력과 은총』을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아이리스 머독

아이리스 머독은 191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주했습니다. 공무원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 영향인지 머독은 노래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식사를 맛있게 한 뒤에 자주 노래를 불렀습니다. 1938년부터 옥스퍼드 대학교 서머빌 칼리지에서 고전, 고대사,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 머무르며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942년에는 영국 재무부에서 잠시 근무하고, 1944년부터 2년간 영국, 벨기에, 오스트리아의 유엔난민구호기구(UNRRA, United Nations Relief and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에서 일합니다. 당시 머독은 수용소 수감자들의 상황에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감자 화물을 실은 철도 객차를 불법적으로 열어 주었다는 사실을 한 슬로베니아인이 회고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읽으면서 철학을 더 깊게 하고픈 생각이 들어 케임브리지로 향했습니다. 1948년에 옥스포드로 돌아와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벨기에에서 일할 때 사르트르를 만나고 실존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한 머독은 1953년에 첫 책인 『Sartre: Romantic Rationalist』를 발표합니다. 다음 해에는 첫 소설 『그물 아래(Under the Net)』을 발표했습니다. 이후로 26여 편의 소설을 출간합니다. 한국에는 『그물을 헤치고』, 『바다여, 바다여』가 번역되어 있습니다. 더블린에서 태어난 머독은, 아일랜드 전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세 소설의 배경을 에이레(Éire)로 삼습니다. 뿌리와 삶의 터전이 서로 달랐던 경험과, 전쟁에서의 체험이 머독에게 망명자의 위치와 악의 근원에 대해 반성하고, 소설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 옥스포드 역시 머독의 소설에 자주 등장합니다.
머독은 학계의 제도 바깥에서 철학적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머독은 도덕에 주목하며 정직하게 ‘보려는’ 시도(『선의 캐리커처』의 표현에 따르면 ‘시선’이겠지요)를 합니다. 1970년 발표한 『The Sovereignty of Good』(한국에서는 『선의 군림』으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에서 ‘선’이 세계 속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침의 형태로, 그러나 인간적 욕망의 장 너머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옹호했다고 합니다. 머독은 1956년 존 베일리와 결혼합니다. 머독은 삶의 후반부에 알츠하이머병을 앓았습니다. 존 베일리는 머독이 세상을 떠나기 3주 전까지 그를 돌보았습니다. 1999년 머독은 옥스포드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존 베일리의 책을 바탕으로 영화 〈아이리스〉가 2001년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선의 캐리커처』를 읽고 머독의 사유가 궁금한 독자는 『선의 군림』을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셋의 접촉면
자, 이 세 사람에게는 어떤 접촉면이 있을까요? 철학적 접촉면에 대해서는, 이하영 선생님이 『선의 캐리커처』에서 써 주실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건 저의 몫이 아닙니다. 먼저, 보부아르와 베유는 비슷한 시기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머독은 십 여년 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곧 영국 런던으로 이주합니다. 세 사람의 삶의 궤적은 아주 다릅니다.
먼저, 보부아르와 베유는 만난 적이 있습니다. 보부아르는 베유를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언제든 탄식할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보부아르의 책 『Mémoires d’une jeune fille rangée』(1958)에서 베유와 만났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대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녀[베유]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즉 모두에게 먹을 것을 줄 혁명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 못지않게 단호하게 인간의 행복을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녀는 나를 의심했다. “당신이 배고픈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관계는 거기서 끝이 났다.
머독은 벨기에에서 사르트르를 만나고 실존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후 비판적으로 그들의 사상을 흡수합니다. 베유의 ‘주목(Attention)’ 개념으로부터 역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의 군림』에는 “내 설명이 시몬 베유의 사유에 크게 기대고 있음을 여기서 꼭 언급하고 싶다”라는 말을, 어느 날 일기에는 “오래전 시몬 베유를 처음 읽으며 발 들인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 저 멀리 숲속에서 비치는 빛을 보게 될 날이 올까?”라는 말을 적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의 직접적인 교차는 거의 없습니다. 보부아르와 베유는 짧게 만난 적이 있고, 짧은 기록 속에서 서로의 철학적 태도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적 자유와 의미를, 베유는 굶주림과 혁명을 강조했습니다. 머독과 보부아르 역시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사르트르를 매개로 실존주의에 대한 독서와 비판을 통해 접촉면을 마련합니다. 머독에게 베유는 윤리학의 결정적 자리를 차지합니다. 머독은 베유를 매개로 선의 초월성을 사유합니다. 『선의 캐리커처』에서는 선의 내재성과 초월성, 선택의 윤리학과 시선의 윤리학을 교차하며 인간의 윤리적 실존에 대해 묻습니다.
이제 『선의 캐리커처』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고, 곧 만나겠습니다!
감수
이하영(철학 연구자)
사진 출처
(1) 시몬 드 보부아르 https://www.theparisreview.org/interviews/4444/the-art-of-fiction-no-35-simone-de-beauvoir
(2) 시몬 베유 https://www.nybooks.com/articles/2013/06/06/simone-weil/
(3) 아이리스 머독 https://www.themarginalian.org/2016/02/24/iris-murdoch-causality-chance-love/
한국에 발간된 책
[옮긴이를 밝혀둔 책만 정리했습니다. 같은 책은 가장 최근에 번역된 것으로 표기해 두었습니다.]
시몬 베유
시몬느 베이유 철학교실, 황세연 옮김, 중원문화, 2006. (절판)
뿌리내림, 이세진 옮김, 이제이북스, 2013.
신을 기다리며, 이세진 옮김, 이제이북스, 2015.
중력과 은총 / 철학강의 / 신을 기다리며, 이희영 옮김, 동서문화동판, 2017.
중력과 은총, 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이종영 옮김, 리시올, 2021.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 이종영 옮김, 새물결, 2021.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이종영 옮김, 리시올, 2024.
시몬 베유 노동 일지, 박진희 옮김, 호메로스, 2024.
신을 기다리며, 이창실 옮김, 복있는사람, 2025.
시몬느 드 보부아르
타인의 피, 반광식 옮김, 일신서적, 1994.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 이정순 옮김, 1999.
미국여행기, 백선희 옮김, 열림원, 2000.
계약 결혼, 이석봉 옮김, 선영사, 2001.
편안한 죽음, 함유선 옮김, 아침나라, 2001. (절판)
노년, 홍상희, 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
젊은 날의 고뇌, 정성호 옮김, 문지사, 2002. (절판)
제2의 성, 이희영 옮김, 동서문화사, 2009.
처녀시절/ 여자 한창때, 이혜윤 옮김, 동서문화사, 2010.
죽음의 춤, 성유보 옮김, 한빛문화사, 2010. (절판)
모든 인간은 죽는다, 변광배 옮김, 삼인, 2014.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최정수 옮김, 부키, 2016. (절판)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 한길석 옮김, 꾸리에, 2016.
모든 사람은 혼자다, 박정자 옮김, 꾸리에, 2016.
레 망다랭 1-2, 이송이 옮김, 현암사, 2020.
아주 편안한 죽음, 강초롱 옮김, 을유문화사, 2021.
작별의 의식, 함정임 옮김, 현암사, 2021.
제2의 성, 이정순 옮김, 을유문화사, 2021.
보부아르의 말, 이정순 옮김, 마음산책, 2022.
초대받은 여자 1-2, 강초롱 옮김, 민음사, 2024.
둘도 없는 사이, 백수린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4.
연애편지, 이정순 옮김, 을유문화사 2024.
위기의 여자, 손장순 옮김, 문예출판사, 2025.
아이리스 머독
그물을 헤치고, 유종호 옮김, 민음사, 2008.
바다여 바다여 1-2, 최옥영 옮김, 민음사, 2009.
선의 군림, 이병익 옮김, 이숲, 2020.
바다여 바다여 1-2. 안정효 옮김, 문예출판사,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