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사람들: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당신은 산책에서 영혼의 기척을 감지해 본 적 있는가?

산책하기에 적합한 계절을 딱 잘라 언제라고 단정하는 일은 관두자. 계절은 그마다의 풍경이며 정취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은둔과 동시에 여행을 “남몰래 소망하는” 작가 배수아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함께 여름 정원 오두막에서 종종 시간을 보낸다. 『작별들, 순간들』(2023)은 2022년 5월부터 10월까지 문학동네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순간들 기록 없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배수아의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은 여름 정원 오두막에서 쓰인 글과 풍경의 집합이다. 한 개인의 글이, 그곳에 도달한 적 없거니와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읽힐 수 있을까. 글과 동행하는, 글이 태어나는 장소를 돌보고 가꾸어 온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같은 책을 여러 권 갖고 있거나 여행을 갈 때마다 짐가방을 꾸리는 일을 곧 책을 담는 일로 생각할 정도로 책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의 『연인(L'Amant)』(1984)과 『에밀리 L.(Emily. L)』(1987)을 건네고 글 속 배수아는 그것을 산책의 정경 아래 읽는다. 읽는 이는 다만 텍스트의 정취를 따라가기 위해 또는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장소를 더듬고 경로를 추적해 가면서.


나는 나무에 대해서 말하지 않지만, 언젠가 말하게 될 것이다. … 나무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항상 범죄나 마찬가지인데, 마치 사랑에 대한 말처럼, 이미 너무 많이 그것에 대해 말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¹


글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 「후세에게(an die Nachgeborenen)」(1934-38)에 빚진다. “우연으로 살아남은” 자만이 (무심코 또 평범히) “나무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온 현재의 시점에서, 그 시대를 기억하면서도 계절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쓴 것으로 짐작된다. 산책은 여러 순간을 지나가거나 지나오는, 횡단의 행위이다. 때론 점으로 구분되는 지정 구역을 기억하면서 그사이를 횡단하며 마주치는 것들을 기억하고 말하는 일은, 그것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뒤져보거나 검색하여 정보를 얻는 일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이를테면 영혼 저 멀리 묻혀있던 당신의 아득한 기억을.

한 사람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경로가 있을 테지만 우선 가장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데서 단서를 찾기로 한다. 산책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 여름 정원 오두막의 토양과 그 터의 부근에 무엇이 자라나는지를 특히 주목해 보자. 여름 정원 오두막을 투야나무가 은밀하게 둘러싸고 있다. 투야Thuja라는 이름은 아름다우면서도 한참 생소한 인상을 준다. 한겨울 눈이 잔뜩 내린 설원의 풍경에서 당신이 만약 꼿꼿이 생명의 숨결을 지닌 선명한 침엽수의 초록빛 이파리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투야나무의 잎일 확률이 높다. 이처럼 사계절 푸른 상록수에 속하는 투야나무는 측백나무과 특유의 맹아력(萌芽力)이 좋아 정원목으로 심어 가꾸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나 봄으로 들어서는 길목을 장식하는 것은 보석처럼 빛이 나는 설강화Schneeglöckchen. 눈Schnee 속에서 피어난 작은 종Glöckchen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번 마주한다면 영영 잊을 수 없는 장면처럼, 눈이 내렸던 자리를 또다시 환상으로 메꾸어 주는. 5월의 정원에 밤이 찾아오면 나이팅게일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때맞춰 무리 지어 흰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면 서서히 아리따운 모습으로 붉어져 여러 새를 유혹하는 듯한 마가목Vogelbeere과 한국의 여느 진달래과 식물보다는 조금 더 꼿꼿한 인상의 로더덴드런Rhododendron이 두드러진다. 식물들이 왠지 신이 나 보이는 이맘때 풍경으로 역시 양귀비Mohn을 빼먹을 수 없는데, 양귀비 씨앗으로 만든 여러 디저트 가운데 몬쿠흔Mohnkuchen이 대표적이다. 독일의 빵집에서 검은 씨앗이 잔뜩 박혀 있거나 장식되어 있는 제과는 보통 이 양귀비 씨앗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9월이 되면 수확을 시작하는 로즈힙은 독일어로 하게부테Hagebutte인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호명된다는 점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동네에 열리는 시장에 나가 보면, 하게부테로 만든 마멀레이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작별들, 순간들』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활자 너머로 기억이 동기화되면서 삽입된 어떤 풀밭의 장면이 있다. 어느 부활절의 휴가 때 머물렀던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경계에 있는 린다우Lindau의 들판에서 누군가 내게 건넸던 풀. 자우어암퍼Sauerampfer라는 이름을 가진 이 풀은 이름 속에서 자우어Sauer가 붙은 것처럼 신맛이 난다. 자우어암퍼의 신맛은 마당과 풀밭에 자주 보였던, 토끼풀만큼 날렵하거나 탄력이 있진 않고 가느다란 줄기, 하트 모양의 잎 모양으로 구별 지어 알아볼 수 있는 괭이밥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자우어암퍼는 한때 마당에 너무 많이 자라 다들 잡초로 생각해 금방 뿌리를 뽑거나 잘라내곤 했던 까마중을 연상시킨다. 까마중은 가지과의 한해살이풀로, 번식력이 좋아 금세 무릎까지 자라난다. 무당벌레는 까마중의 잎을 좋아해서, 이들이 잎사귀 위에 붙어 있거나 잎을 갉아 먹은 흔적을 보는 일도 흔하다. 자우어암퍼처럼 까마중을 까마득한 들판에서 마주친 것은 아니어도 여름 언젠가 골목길의 전신주 아래에서나 공터의 구석, 여러 식물이 무수히 우거진 산길 경계에서도 잘 자라는 이 식물의 이름은 글을 쓰며 처음 알게 되었다. 흰색 꽃이 피고 나면 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탱탱한 열매가 열리고, 이 열매가 작은 포도처럼 보랏빛으로 잘 익고 나면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싹이 난 감자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독성의 성분 솔라닌Solanine이 익지 않은 까마중 열매에도 들어 있어서, 열매가 충분히 익지 않았을 때는 먹으면 안 된다고 알려져 있다. 실은 이렇게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열매의 색채를 보고서 언제 수확의 시기가 도래하는지를 어쩐지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던 것 같다. 까마중의 열매에서도, 그때 한 번 먹어보라며 L이 내게 건넸던 자우어암퍼의 시큼한 맛이 겹쳐진다.

자우어암퍼는 특유의 신맛이 있어 샐러드에 허브를 더하는 개념으로 얹어 먹거나 수프의 가니쉬로 활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식물이다. 7월에서 8월경, 독일 남부에 머물 기회가 있다면 들판의 색깔이 어떠한지 살펴보라. 이맘때 들판이 서서히 붉어져 가는 것은 자우어암퍼의 작은 꽃송이들이 피었다가 고개를 떨구기 때문인데, 매해 자연스레 들판의 색채를 책임지는 만큼 자우어암퍼는 꽤 생존력이 좋아 밭을 일구는 농부들이 이들을 베어내는 데 고생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작별들, 순간들』의 주된 인상을 자아내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히스Heath를 빼놓을 수 없다. 북독일에 넓게 드리워진 히스 황무지 지역인 뤼네부르크 히스Lüneburg Heath는 기프호른Gifhorn부터 북쪽의 함부르크Hamburg까지를 점유하는 히스의 자연경관을 일컫는다. 1921년부터 나라에서 관리하는 주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해마다 아득하고도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물들어 산책자 여럿을 불러 모은다. 이 책 속의 산책자들은 기프호른 히스의 호숫가를 거닐고 그 옆의 자작나무 숲을 지나, 물가를 서성이는 왜가리를 마주친다. 호숫가 가까이에 자리 잡고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즉석에서 반죽해 빵을 굽고, 가을 무렵을 지나 그사이 수위가 높아진 호수에 몸을 담그고 나서,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가기 위해 너도밤나무 아래를 지난다.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마당에 존재감 있게 자란 안개버섯은 추분(秋分)의 시작을 알린다. 독버섯을 피해 먹을 수 있는 버섯을 채집하다 저 멀리 들판의 경계를 바라보면 어느새 검게 변한 자우어암퍼.

배수아의 작품을 연이어 읽은 독자라면 라디오극 또는 오디오극에 관해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라디오극Hörspiel은 독일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고유한 예술 장르로, 시각적 요소를 배제하고 음향, 목소리, 대사 혹은 대화 등의 청각적 요소로만 구성된 극예술이다. 오로지 소리의 표현을 통해 다양한 실험적 서사를 시도한다는 측면에서 1920년대 첫 출현 이래 암흑기의 시대를 지나오며 사그라든 적도 있지만, 독일의 공영 방송사인 ARD 등을 통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즐겨온 매체다. 독일어로 말해지고 감상 되어야만 하는 장르의 특성상 라디오극은 원본 자체가 온전히 번역될 수 없을뿐더러 보조 수단을 통해 다른 문화권으로 쉽게 옮겨갈 수 없으므로, 독일어권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면 꽤 희소할 수밖에 없다. 배수아는 글쓰기를 통해 라디오극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종종 호출한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2013)에서는 오디오 극만을 상영하는 오디오 극장의 관리인이자 배우인 아야미가 등장한다. 『작별들, 순간들』에서는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무대 디자이너, 작가, 정원가,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였던 데릭 저먼Derek Jarman의 작품 중 영화와 라디오극의 어딘가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 〈블루(Blue)〉(1993)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정된 조건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며 확장하는 라디오극과, 여기서 저기로 떠났다가도 출발의 장소로 돌아오고 마는 산책의 이미지를 겹쳐 본다. 무작정 발걸음을 내디디며 몸의 기억으로 새겨내는 산책의 행위와 말로써 이미지를 전달하는 라디오극이 중첩되어 보이는 것은 서로 다른 이 행위가 고독함의 그림자 아래 행해지기 때문일까. 일조량이 줄어들거나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소망하며 궤적의 바깥으로 향하는 산책은 극의 궤도 안에서 꾸준히 독백하는 목소리를 닮았다. 비유, 설명, 깊은 성찰로도 깨달을 수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가장 현상적인 일. 다음에 숲을 향하게 된다면, 발밑을 살피고 하늘로 고개를 쳐들어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걸어 나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는 ‘숲안쪽das Waldinnere’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훨씬 더 평범하게 ‘숲속’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나를 가장 매혹시킨 하나의 단어는 ‘숲고독die Waldeinsamkeit’이다. 그러나 그것을 ‘숲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²


  1.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문학동네, 2023, 29쪽.

  2.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문학동네, 2023, 37쪽



글. 정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