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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미티드에디션 참가 후기 2025

2026. 2. 5.

(세빈) 첫 언리밋! 저는 수많은 독자를 만나는 것에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사람이 많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가장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언제였나요?

(명민) 언리밋 행사에 판매자로 참여하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첫날은 새로움에 취해 견디고, 둘째 날부터는 계속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들어볼 만한 이야기를 드릴게요(동시에 저자를 비롯한 우리 팀원들, 그 외에도 많은 분의 노고를 떠올리며), 돈을 지불해주세요. 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논리를 3일 동안 설파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도망치고 싶지 않을 때가 과연 올까요…

(수지) 정말 즐거웠던 동시에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던 모순적인 순간들 속에서, 어떤 순간만을 딱 꼽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네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다른 부스의 책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몸은 부스를 지키고 있어야 할 때, 가장 도망치고 싶었달까요? 쉬는 시간에 맞춰 잠시 휴식 공간을 방문했는데, 한쪽 구석에서 매트를 펴고 조용히 요가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어요. 실제로 제가 요가를 하지 않는데도 왠지 그 모습을 잠시 엿본 것만으로도 충만한 휴식이 찾아온 것처럼 느꼈습니다. 열띤 분위기가 지나가고 갑자기 어느 호숫가에 당도하게 된 느낌, 지금도 종종 떠올리곤 하는 잠깐의 정지된 풍경입니다.


(세빈) 또한 수많은 독자를 만나서 면과 면을 마주하며 책을 직접 소개할 수많은 순간을 보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말이 있을까요?

(명민) 이번 북페어에서 처음으로 EVM의 Editions of Essays 신간을 소개한 것이어서, 지인분들을 제외하고는 책의 콘텐츠나 저희 콜렉티브의 기획을 알고 찾아오시는 분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정작 북페어 자리에서는 책의 내용에 관한 간략한 소개가 주를 이뤘는데요. 책을 구매하신 독자분들이 행사 이후에 남겨주신 리뷰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중 책의 한 페이지에 담긴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왕왕 치며 읽어주신 분이 그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려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누군가의 문장 하나하나에 감화되어 본 적이 있었던 과거의 저의 독서 경험을 떠올렸고, EVM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 그러한 순간을 제공한 것 같아 기쁨을 느꼈습니다.

(수지) 북적이는 인파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꼼꼼히 책을 살펴봐주신 방문객의 관심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립니다. 특정한 기억을 꼽는 것은 쉽지 않은데, 제게는 에세이의 두 저자분이 직접 책을 매개로 독자와 소통하는 순간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EVM의 3인만큼이나 진지하고 또 열정적으로 부스에 자리해주신 덕분에 책에 관한 궁금증을 그때마다 나누어볼 수 있었습니다. 발행인인 동시에 독자로서 다시 또 새롭게 책의 면면을 살펴보게 되었던,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명민) 다시 언리밋 북페어에 참여하게 된다면 보완하고 싶은 점이 있나요? 혹은 반대로 만족스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세빈) 모든 순간을… 농담이구요. 독자가 책을 더 편하게 펼쳐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어요. EVM의 책은 텍스트 위주여서 한 마디로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 명료함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어요. 부스 크기가 작기도 했지만요. 다음 번에는 무언가를 만들어가서 책을 모르는 예비 독자가 멀리서도 EVM의 책 내용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서 선보이고 싶어요. 좋은 책이라 더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라거든요.

(수지) EVM은 Edition of Essays로 출간한 두 권의 에세이와 함께 팀원들이 각자 만든 Edition of Artist’s Books를 들고 이번 북페어에 참여했습니다. 소개와 더불어 판매를 목적으로 한 두 에세이와는 달리, 일종의 전시를 하기 위해 들고 온 Edition of Artist’s Books를 한 테이블 위에서 어떻게 나란히 잘 보여드리면 좋을지 고민스러웠어요. 첫날인 금요일에는 두 카테고리를 나누어서 선보이다가, 토요일부터는 판매하는 책을 중심으로 다시 디스플레이를 조정하고, 시간당 한 권씩 돌아가며 Edition of Artist’s Books을 보여드리는 식으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방문객들의 반응이나 집중도를 살피면서, 또 EVM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부스를 꾸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직접 행사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테이블이 너무 비어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는데, 오히려 당일이 되고 보니 현장의 북적거림과 부스의 화려함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여백의 필요성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더 넓은 판매대 위에서, 여유로운 책의 장소를 꾸려보기를 소망해봅니다.


(명민) 북페어 수는 늘어나고 행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관객은 매년 증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반면 출판계는 점점 하락세를 타고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합니다. 직접 페어에 참여해 책을 홍보하고 독자들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세빈) 저는 EVM과 함께하며 또한 농촌 도서관에서 일합니다. 또한 서브잡으로 여러 책을 만들어요. 또한 연구자(지망생)로서 책을 붙잡고 살아야만 가능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답변을 적기 전에도 제 책상 위에 올려진 대여섯 권의 책 중 무엇을 읽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텍스트를 붙잡으며 저는 때때로 텍스트의 쓸모에 대해 묻곤 합니다. 이번에 두 책을 편집하고 함께 자아가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책은 계속해서 출판되고, 책을 읽는 사람은 지각을 더욱 쉽게 포착하는 인터넷의 발달, 특히 책을 읽지 않아도 이것저것을 답해줄 수 있는 AI와 가깝게 지내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종종 밤중에 아무도 없는 일터에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독자에게 가닿지 않은,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에 적혀 있는 이야기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져 도서관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져요. 그럴 때일수록 어쩌면 단 한 번도 펼쳐질 가능성이 없는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덧없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언리밋에서 만난 수많은 독자, 그리고 제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 무엇보다도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넘기고 있는 읽는 이(讀者)의 조용한 등을 볼 때면 여전히 텍스트는 존재하고, 누군가는 그 텍스트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절대적인 안심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니 동료들과 (미래) 필자와 함께 EVM에서 여러모로 좋은 책을 자아가고 싶습니다.

(수지) 북페어에 관한 소식만 멀리서 또 가까이서 접하기만 하다가, 이렇게 참여팀으로 함께한 것이 제게는 최초의 경험이라서 실제로 정말 많은 분이 책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찾아와 주신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현장에서 넘치던 생동감은 출판 시장과 출판하는 일에 관한 어떤 비관적인 전망을 씻기게 해주는 것도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출판 동료들을 직접 양 옆 부스에서 만나뵙고 함께할 수 있던 시간이 앞으로도 용기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수지) 특별히 기억나는 부스, 새롭게 알게 된 현장의 동료가 있었나요? 혹은, 인상 깊었던 방문자가 있었는지!

(명민) 저희가 처음 EVM의 브랜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참고했던 여러 레퍼런스 중 하나로 편않 출판 공동체가 있었는데요. 신간도 구경할 겸 부스에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었어요. 이후 저희 팀원들이 돌아가며 방문하자, 편않에서 발행된 출판물 여러 권을 무료로 챙겨주셨습니다. 문득 일반적인 출판사의 직원이었다면 이런 형태의 나눔이 가능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 지점에서 ‘출판 공동체’라는 이름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들며, 아낌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시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또 하나는 닻프레스입니다. 제책에 관심이 많아 유독 가보고 싶었던 부스였는데요. 제가 부스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천천히 뒤적거리는 동안, 그날 나와 계시던 제책가 분께서는 제가 말을 걸기 전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계셨어요. 이후 제가 드린 질문에는 충분한 답변을 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정교한 책을 만들고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그러한 침묵이 독자에게 좋은 순간을 남기기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빈) 수지와 명민이 쉬는 시간을 맞아 혜목님과 저 둘이서 부스를 지키던 중에 찾아온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혼란스런 복도의 와중에 서서 저희의 모든(!) 책을 열심히 읽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은 여쭤보기도 하고, 수지 명민 그리고 저의 책도 열심히 보고 물어 주셨지요. 그 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저희 책이 언리밋 모든 책중에서 최고라고 해주셔서 허걱, 이렇게 감사한 일이! 했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부스는 포도밭출판사인데요. 존 케이지의 새 책 『침묵』(나현영 옮김, 2025) 발간 소식을 듣고 신나서 구경하러 다녀왔습니다. 악보에 특별한 애정을 느끼고, 작년에 Edition of EVM을 작성하며 더욱 존 케이지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포도밭출판사 선생님께서는 뜨개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희미한 기억으로는 보라빛이 나는 실로 목도리를 뜨고 계셨던 것 같아요. 존 케이지의 침묵으로 이뤄진 〈4:33〉이 무한정 연속 재생되는 것 같은, 언리밋 전체의 소음이 소리로 (재)구성되는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두꺼워서 집으로 들고 갈 자신이 없어 책은 구매하지 않았는데, 생각난 김에 책장에 자리를 마련해볼까 합니다.


(수지) 책을 만들어온 지난한 시간이 갑자기 무척이나 입체적으로 느껴졌던, 두꺼운 3일이었습니다. ㅎㅎ 자신에게 행복했던, 혹은 특별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명민) 신나는 하루와 숨고 싶은 이틀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올해에도 좋은 책을 만들어 고됨을 무릅쓰고 페어에 참여해 독자분들을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함께 책을 만드는 일에 이만큼의 동력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아요.

(세빈)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하루가 끝나고 (친구)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아직은 자전거를 탈만 해 매일 따릉이를 빌려 탔어요. 저는 불빛 없는 저녁이면 고요한 동네에 살아 바깥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따릉이를 타고 본 서울의 밤은 밝고도 북적이더군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며 그 날에 만났던 사람, 지나친 사람, 그리고 여러 출판사에서 서로의 책을 소개하던 소란스런 소리, 그 와중에 들던 작은 생각들을 여며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