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소노그래퍼』 저자 엄선영 인터뷰

이 글은 저자 엄선영 님과 EVM이 『회복의 소노그래퍼』 출간을 준비하며 나눈 서면 인터뷰입니다. 편집을 거치는 동안, 『회복의 소노그래퍼』는 회복이라는 관념이 그리는 떨리는 듯한 정의定義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어떻게 가닿을 수 있는가를 서슴없이 보여주는 글과 마음이 모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 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이 지면을 빌려 솔직히 적어 주셨습니다.
(EVM) 선영 님의 원고를 읽었을 때, 언어가 지닌 촉각성을 감지했습니다. 이 촉각성이 전염과도 같이 타자에게 전이되고 옮겨가는 때, 문학이 감히 관통하여 오는 어떠한 투명한 감동이 있어요. 『회복의 소노그래퍼』를 읽는 동안, 나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다른 이에게서 나에게로 오가는 언어의 부피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강 소설가의 작품 외에도 선영님께 떠오른 다른 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함께 소개할 만한 글이나 작품 등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엄선영) 이원 시인의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서, 인간의 어쩔 수 없음 앞에서 무력해졌을 때, 이 시를 여러 번 필사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내가 느끼는 감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한때 인간이 되고자 했던 것은
태양 속에 설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
태양 아래 서게 되었을 때 내내 꼼짝할 수 없던 것은
불빛처럼 햇빛도 구부러지지 않았기 때문.
오래 아팠다고.
잘라버린 가지는 나의 두 팔이었던 것.
끝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끊어진 두 팔을 뚫고 이제야 나오는 손. 징그러운 새순.
허공은 햇빛에게 그토록 오래 칼을 쥐어주고 있었던 것.
어쩌자고 길부터 건너놓고 보니 가져가야 할 것들은 모두 맞은편에 있다.
발목쯤은 자를 수도 있다.
그토록 믿을 수 없는 것은 명백한 것. 우세한 것. 정렬된 것.
발이 그토록 오래 묻고 있었던 것.
흙 속에 파묻혔던 것들만이 안다. 새순이 올라오는 일.
고독을 품고 토마토가 다시 거리로 나오는 일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
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
—이원,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중
저는 이 시가 육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왔어요. 특히 촉감. 흙에 발이 묻힌 사람이 이도저도 못하다가,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타인을 마주하는 시로 읽혔거든요.
”흙 속에 파묻혔던 것들만이 안다.“ ”고독을 품고 토마토가 다시 거리로 나오는 일“ 여기서요.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마지막.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
결핍을 필요로 바꾸는 것. 결핍에 함몰되지 않고 지지 않고 쓸모로 만들 수 있다는 무언의 희망을, 이 시 속에서 느꼈어요. 여담이지만, 이 시를 좋아한 뒤로 새 노트를 살 때 매번 첫 페이지를 비워두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EVM) 『회복의 소노그래퍼』 원고를 살펴보고 편집하면서, 일전에 어떤 소설을 쓰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소설을 써오셨는지, 짧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엄선영) 소설이 하나둘 쌓여가면서 어느정도 맥락이 잡혔어요. 고립된 인물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VM) 회복의 소노그래퍼』에서 나타나는 기도원이라는 장소, 기도의 행위는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개인이 가진 종교와 신앙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선영 님이 인식하는 ‘믿음’의 존재와 그 내용에 대해 듣고 싶어요.
(엄선영) 제가 인식하는 믿음은 누군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지워지기로, 작아지기로, 인내하기로 선택한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또한 순간적이죠.
순간적인 마음이 형상화가 된다면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신도 인간도 믿지 않지만, 인간의 순간적인 마음을 믿어요. 나 아닌 상대를 위해 기꺼이 작아질 수 있는 마음. 그런 사람들 덕분에 버틴 시절이 있었거든요.
요즘은 자신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자신 안에 있는 결핍과 못난 마음을 인지하고,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 또한 믿음의 영역에 속해있다고 생각해요. 이런저런 마음이 떠오르고, 답변과는 다른 맥락으로 빠져가는 것 같은데.
결국엔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마음이, 믿음 같아요.
소설 속 인물들을 구상할 때 자주 하는 생각이 있는데요.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 네가 문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네가 거리를 걸었으면 좋겠다. 네가 햇볕을 쬐며,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 좋겠다.
이 순간적인 생각, 마음이 신이라고 명명되는 존재 혹은 현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EVM) 글을 쓰는 일로부터 회복, 구원의 효과 이외에도 또 무엇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선영님은 왜 글을 쓰시나요?
(엄선영) 선언입니다. 못하니까, 못 하니까 써요. 매번 실패하니까 써요. 끈질기게 쓰면 언젠가는 실현되더라고요. (이것 또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EVM) 예상되는 독자가 있을지, 혹은 기대하고 있는 독자층이 있을지? 저자로서 어디서 이 에세이를 소개하고 싶은지?
(엄선영) 고립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에게.
홀로이면서도 함께라는 사실, 함께이면서도 영원히 오롯하게 홀로임은 인간 존재가 늘 마주하고 있어야만 하는 실존적인 사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각이 단지 나에게 한정된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비추어 볼 수 있다는 희망, 겹치어 보면서 합일合一을 그려볼 수 있음을 ‘믿는’ 일은 존재를 영원한 고립의 굴레에 빠뜨리지 않게 합니다. 『회복의 소노그래퍼』에서 나직하게 내뱉는 어떠한 숨소리가 이 믿음의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순간적인 기도는 막幕을 부수고, 벽 너머를 향하는 다리를 기꺼이 지어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