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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들’-4

2025. 6. 8.

보리수가 익으면 여름이 온다,고 몇 년 전 여름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부쩍 다가오고, 잠시 여름을 보내러 온 새들의 소리로 바깥 숲이 울립니다. 호랑지빠귀, 꾀꼬리, 개개비, 검은등뻐꾸기, 제비… 이름과 소리를 알지 못하는 새들의 소리도 들립니다.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 걸어가던 어느 여름 밤, 가이아 마가렛(Gia Margaret)의 Mourning Dove가 재생되었고, 저는 잠시 이어폰과 바깥의 소리를 혼동했습니다.

이런 새의 울음소리를 악보로 기보한 사람이 있습니다. 1982년 어느 날, 윌름 가의 고등사범학교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이 발견됩니다. 시미언 피즈 체니(Simeon Pease Cheney, 1818~1890)의 『야생 숲의 노트: 새소리 음악 악보(Wood Notes Wild: Notations of Bird Music)』입니다. 시미언 피즈 체니는 1860~1880년 사이에 미국 북동부 버몬트주의 도셋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신부로 지낼 때, 사제관 정원에 찾아온 새들의 소리를 노래로 기보했습니다. 시미언 피츠 제니가 살아 있을 때에 여러 출판사에 출간 제의를 했지만 어느 곳도 받아 주지 않고, 그의 아들이 나중에 악보를 출간했습니다.

“작은 새들은 대부분 아주 빠르게 노래한다. 너무 빨라서 들리는 것이 고마울 정도다. 그러나 이 작은 새는 웬일인지 맑은 2분음표 하나가 스타카토가 붙은 32분음표로 꽉 찬 곡만큼이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검은머리박새는 종종 노래로 유쾌하게 화답한다.”

시미언 피즈 체니의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변주시킵니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는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Dans ce jardin qu’on aimait)』라는 희곡을 씁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죽은 아내 에바를 그리워하는 시미언을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이 책은 2021년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연극 무대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드보르작(Dvořák)은 미국 여행 도중 시미언 피즈 체니의 책을 읽고 새 소리를 본따 작곡을 했고(현악 4중주 제12번), 라벨(Ravel)은 겨울 2악장인 ‘슬픈 새(Oiseaux tristes)’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은 1956~1958에 ‘새의 카탈로그(Catalogue d’oiseaux)’를 발표합니다. 새의 카탈로그에서,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알프스 노랑부리 까마귀, 노랑머리 꾀꼬리, 바다 지빠귀, 딱새, 부엉이, 숲 종다리 등 다양한 새의 소리를 기보하고 작곡한 선율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소설가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 두 가지 언어로 소설을 쓰는 이중 언어 사용자입니다. 그는 독일어로 말을 할 때 숲에 서서 새들의 음악을 들으며 그것을 기록하고 모방하려는 작곡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낯선 발음, 낯선 울림으로 말하기. 이러한 모방적 말하기는 모방하는 언어의 내용과 문법과는 영영 거리가 멀기도 합니다. 다와다 요코는 메시앙의 피아노 건반은 새 소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는 속도보다 새의 노랫소리는 간격이 훨씬 짧고, 인간의 박자 체계를 따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메시앙의 변형 작업은 정확하고 세심하며 주의 깊습니다. 몇몇 사진은 자연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엿듣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는 손에 연필을 쥐고 새들의 노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모방한 것은 다름 아닌 모방 행위 자체예요. 새가 지닌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새가 지저귀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니까요. (중략) 낯선 혀로 말하는 사람은 조류학자이자 한 마리의 새입니다. (다와다 요코, 『변신』, 정항균 옮김, 세창출판사, 2025년, 32쪽.)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소리를 모방하고, 자연 속에서 새로운 소리들을 또한 만들어냈습니다. 리소폰(lithosphone)이라는 아주 오래된 악기가 있습니다. 돌을 내리치면 돌의 두께와 물질성에 따라 다른 소리가 울립니다.

한국에도 돌로 만든 악기가 있습니다. 편경과 특경이라는 악기입니다. ‘ㄱ’을 닮게 경돌(옥)을 깎아 나무 판에 두 단으로 각각 여덟개 씩 매달아 둡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예종 11년때 처음 편경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 돌을 만드는 재료인 경석이 희귀해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하다가, 세종 7년에 경석을 발견하고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경은 커다란 ‘ㄱ’ 돌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이 돌의 음은 국악의 기본음인 황종의 소리를 내고, 제례악에서 음악을 마칠 때 사용됩니다. 틀 위편 양쪽에는 봉황이, 꼭대기에는 공작 다섯마리가, 아래에는 기러기가 있습니다. 소리가 높으면 돌을 갈아 얇게 하고, 소리가 낮으면 세로로 잘라 음을 맞춥니다. 음악을 좋아하던 세종이, 박연이 편경과 편종을 새로 만들어 와 시험으로 연주할 때 세종이 그 소리에는 만족했지만 “다만 이칙 1매가 그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합니다. 박연이 다 마르지 않은 먹을 발견해 말리고 연주했더니 그제서 바른 소리가 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존 케이지(John cage)는 이전 글에서도 적은 것처럼 침묵의 소리를, 그리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기보하던 사람입니다. 존 케이지는 버섯을 좋아했습니다. 존 케이지는 버섯을 공부하며 음악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A Mycological Foray』는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 Mycological Foray’는 수집한 사진, 일기, 버섯 채집 등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Mushroom Book’은 일러스트레이터인 루이스 롱(Lois Long)과 식물학자인 알렉산더 스미스(Alexander Smith)와 함께 만들었던 책을 다시 제작해 엮은 것입니다.

인간은 불확정성으로 버섯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받았다. 미국인 작곡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짧은 퍼포먼스 곡들로 이루어진 〈불확정성(Indeterminacy)〉이라는 시리즈에는 버섯과의 마주침을 기리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케이지는 야생 버섯을 찾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류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마주칠 때 발생하는 모든 가능성과 놀라움을 포함해 마주침이 일어나는 ‘지금 여기’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케이지의 음악은 대부분 이렇게 ‘항상 다른’ 지금 여기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것을 고전음악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같음’과 대조했다. (…) 그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4분 33초〉에서 청중은 어떤 음악도 연주되지 않는 상황에서 듣기만 하도록 강요된다. 케이지는 일이 일어나는 그대로 듣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였기에 불확정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연구, 2023년, 95쪽)

애나 칭의 말처럼 존 케이지는 버섯과 마주치며, ‘항상 다른’ 지금 여기의 음악을 듣고 악보에 기보해둡니다. 로베르트 슈만(R. Schumann)은 유모레스크(Humoresque) 20번 2번째 곡인 ‘hastig(빠르게)’의 중간 성부에 “마음으로 연주하라”고 지시해두었다 합니다. 마음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소리, 버섯을 마주하며 나는 소리, 돌을 깎아 내는 소리, 새에게서 듣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세상에는 무수한 소리들이 존재합니다. 캐스파 헨더슨(Caspar Henderson)은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소리들에 대해 『소리에 관한 책(A Book of Noises: Notes on the Auraculous)』에 적어 둡니다. 이 책에는 코스모포니(우주의 소리), 지오포니(지구의 소리), 바이오포니(생명의 소리), 앤스로포포니(인류의 소리) 등을 소개합니다. 캐스파 헨더슨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인간은 스스로를 닫아버리고 세상 모든 것을 자기 동굴의 좁은 틈새를 통해서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렇게 동굴에 갇혀서도 귀로는 멀리서 울려오는 메아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세상의 소리에 함께 귀 기울여 볼 것을 제안합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듣고 1977년 보이저 1, 2호에 실렸던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와 펄서 맵(Pulsar map)이 생각 났습니다.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12인치 구리 디스크의 표면에 금박을 입히고, 알류미늄 보호 케이스에 재생기와 함께 우주로 나갔습니다. 칼 세이건이 이 레코드를 우주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 합니다. 테양의 빛 스펙트럼, 지구, 이집트, 인간의 신체 구조, 아이, 계곡, 숲, 나무, 물고기 등 다양한 이미지를 주파수로 인코딩해 디스크에 기록해두었습니다. 또 인간의 기호를 알기 어려울테니 이진법으로 정보를 표기했고, 지구의 소리, 55개 언어로 녹음된 환영 인사(한국어 “안녕하세요”도 실려 있다고 합니다), 고래 울음소리, 보들레르, 해리 마르틴손, 사디 시라즈의 시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또 칼 세이건과 과학자들이 함께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민요, 나바호 족의 찬가,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등 다양한 음악도 실려 있습니다. 레코드의 바깥면은 10억 년 이상 버틸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앨범 Unknown Pleasures 커버는 산 같기도, 파도 같기도 합니다. 이 곡선 형태의 선들은 1967년에 발견된 중성자 별인 펄서가 방출한 전파 스펙트럼 관측 데이터입니다. 천문학자 조셀린 벨 버넬(Jocelyn Bell Burnell) 이 이 천체를 포착했을 때, 특정한 한 곳에서 짧은 간격으로 일정한 전파가 날아와서 처음에는 어떤 외계인이 인공적으로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농담처럼) 하고, 리틀 그린 맨(Little Green Man)이라는 별칭을 붙였습니다.

우주 생명체가 머나먼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지구에서 전달된 이 편지를 읽은 생명체가 있을까요? 우리는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편지를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받고 있는 게 아닐까요? 새가, 나무가, 물고기가, 바람이, 물이, 애벌레가, 세상이 어떠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 엔딩에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메시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들리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것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듣고 계신가요?



이 글에 나온 책

다와다 요코, 『변신』, 정항균 옮김, 세창출판사, 2025년.

시미언 피즈 체니, 『야생 숲의 노트』, 남궁서희 옮김, 프란츠, 2022년.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연구, 2023년.

캐스파 핸더슨, 『소리에 관한 책』, 김성훈 옮김, 시간의흐름, 2024년.

파스칼 키냐르,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송의경 옮김, 프란츠, 2019년.

John Cage, 『A Mycological Foray』, 2020년.

이미지 출처

(1) 시미언 피즈 체니: https://www.rutlandherald.com/news/the-singing-master-and-the-birds/article_7e4ae058-c0b1-5531-9b65-75f11a6611a0.html

(2) 야생 숲의 노트: https://www.ghostbooks.kr/30/?idx=1028

(3) 존 케이지의 책: https://www.lensculture.com/articles/john-cage-a-mycological-foray

(4) 골든레코드: https://science.nasa.gov/mission/voyager/golden-record-cover/

(5) 조이 디비전의 Unknown Pleasure 커버: https://namu.wiki/w/UnknownPleasures

(6) 편경: 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96227